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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환 교수님의 한글 교육 안내 (3) - 통문자는 안 돼요. (2013년 10월 18일 입력)

한글
작성자
Naksnec
작성일
2020-07-25 14:10
조회
4420
현재 한국에서는 한글 지도에 통문자 학습법이 대세라고 한다.

서점에 나가보면 소위 통문자 학습법을 토대로 만들어진 교재가 대부분이다.

일부 출판사와 학습지 회사가 이를 조장하고 있다.

그런데 통문자 학습법의 학문적, 교육적 효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긴다.

몇 가지 핵심 문제를 짚어 보자.

 

첫째, 통문자의 실제 의미의 혼란

 

사실 이것은 통문자라기보다는 통단어라고 해야 맞다.

가방, 나비, 다리, 하마 등 여러 가지 사물을 그림으로 제시하고 한글 단어를 적어준다.

아이들은 나비 그림을 보고 '나비'라는 글자의 모양을 어렴풋이 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나비'를 '나'+'비'로 인식하지 못하고 '나비'를 하나의 그림처럼 인식한다.

그래서 '나비'는 읽으면서 '나무'의 '나'는 읽지 못하는 시기기 있다.

그러니 통문자는 통단어를 익히는 과정이다.

 

둘째, 통글자에서 낱글자로의 중심 이동.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나비'의 '나'를 분리하기도 한다.

"엄마, '나비'의 '나'자는 '나무'의 '나'자와 같아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아이 스스로 머리 속에서 음절을 분리하여 공통성을 찾아간 것이다.

통글자로 한글을 익혔다는 아이들은 모두 이 과정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막힌 아이들은 한글을 배우지 못하고 상당한 기간을 보내야 한다.

 

같은 낱말을 수십, 수백 번 외우고

비슷한 낱말을 수십, 수백 번 외운 후

음절을 스스로 분리하여 인식하는 과정을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는 낭비이다.

'나'라는 발음을 한번 가르치고 글자를 익히면

그 글자가 어떤 낱말에 나오든지 읽고 쓸 수 있는데, 왜 거꾸로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통글자를 주장하는 출판사나 선생님들도

통글자 다음엔 낱글자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은 실제로 아이들은 낱글자, 즉 음절글자를 알아야 한글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결국 통글자가 아니라는 말이 아닌가?

결국 낱글자를 가르치기 위해 통글자를 다루었다는,

통글자는 흥미 유발 이외에 별 역할이 없었다는 말이 아닌가?

 

셋째, 통글자 주장의 근거 모호

 

그런데도 통글자를 주장하는 이유는 아이들에게 조합이 어렵다는 것이다.

아동심리학적 근거가 있다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소위 대뇌생리학적 근거라는 말인데....

심리학적으로 조합은 어린 아이들에게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개념적으로는 어렵지만 조작적으로는 쉽다.

즉 구체적 조작물을 제공하고 그것의 조합을 가르치면 쉽다는 말이다.

한글의 자모을 추상적 실체로 가르치니까 어려운 것이지

구체적 조작물로 바꿔 가르치면 어려울 것이 없다.

 

넷째, 통문자로 배울 수 있는 낱말의 수 제한

 

통문자로 익힐 수 있는 한글 낱말의 수는 매우 적다.

인간의 기억력을 고려하면 몇 백개 수준이 한계이다.

그래서 통문자 학습법으로 한글을 가르치면 초기에는 한글을 매우 빨리 배우는 것 같지만

일정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학습을 진전시키지 못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통문자 학습법에 몰리는 까닭은

몇 백개의 단어가 아이들의 일상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사물을 대신할만하므로

한글을 거의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다섯째, 통글자 지도 순서의 오류 

 

통글자를 다룰  때 어떤 낱말을 먼저 다루어야 할까?

통글자를 주장하는 사람들(학자, 교육자, 교재 제작자,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 등과 만났었다.)에게 물었다. 어떤 낱말을 먼저 가르칠 것인가?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말했는데 그게 이상하다.

우선 가나다 순서에 맞춰 낱말을 고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ㄱ'또는 '가'에 맞춰 '가방, 가위, 곰, 고양이, 그네, 기린 등'

'ㄴ'또는 '나'에 맞춰 '나비, 나무, 노랑, 노루, 누에 등'

이런 접근은 이미 통문자가 아니라 자모나 음절을 기반으로 한 글자 지도라는 말이 아닌가?

통글자, 통문자, 통단어는 결국 'ㄱ'이나 '가'류를 가르치기 위해 동원된 수단이 아닌가?

그런데 통글자가 핵심 요소인 듯 주장하니 이상하다.

여기에서 더 이상한 것은 'ㄱ'을 배우는데 '가방'의 '방'은 어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나비'의 '비'는 'ㅂ'을 배울 때에야 나오는데 '나비'에서 다루니 'ㄴ'을 가르치는 것인가 'ㅂ'을 가르치는 것인가?

이것은 교육학의 기본 원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비판해도 변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지(이미 아는 것)'을 기반으로 '미지(새로 알아야 할 것)'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 원리인데

'ㄱ'을 가르치면서 'ㄱ' 이외에 한참 뒤에나 배울 것을 미리 넣어 가르친다?

이런 교육 원리는 없다.

또 다른 접근은 주제 중심이다.

가족이나 동물 등 일정 단어 범주를 묶어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가족'을 먼저 가르칠 것인가?아니면 '동물'을 먼저 가르칠 것인가?

'가족'을 먼저 가르친다는 대답을 들었다. 가깝고 친근한 것부터 다루어야 한다는 교육원리란다.

그래서 물었다. '할아버지'는 '하마'보다 어려운데 그 글자를 먼저 가르쳐도 되나요?

한글 교육의 원리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동물'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대답도 들었다.

그래서 물었다. '기린, 하마, 호랑이, 원숭이'를 가르치는 것은 동물의 이름을 가르치는 것인가요 한글을 가르치는 것인가요? 한글이 아니라 동물 이름을 가르치는 어휘 교육이 아닌가?

그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주제 범주의 순서도, 그 안에 가르칠 핵심 요소도 결정하지 못하고

통문자로 가르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여섯째, 통글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전공 의문

 

통글자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같이 유아교육 전공자들이다.

유아교육 전공자들이 모두 통글자는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유아교육학자들 중에는 통글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대로 된 한글학습법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통글자를 주장하는 학자들 중에는 한글이나 국어교육(문학교육이 아니라 듣기교육, 말하기교육, 읽기교육,쓰기교육, 문법교육 등)을 전공한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하자.

한글을 가르치는데 한글 전공자나 국어교육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

유아의 한글 교육에 대해 말할 때 신뢰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먹는 해열제를 생각해보자.

아이들은 알약이나 가루약을 먹지 못하고, 물약이라도 쓰면 먹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 해열제는 달콤한 시럽으로 된 것이 많다.

해열 성분을 먼저 결정하고 그 다음에 달콤한 것으로 옷을 입혀야 한다.

한글 교육도 이것과 같이 개발해야 한다.

한글과 국어교육의 원리를 아는 사람들이 한글 교육의 요소와 과정,

체계를 주관하고, 유아교육 전공자들은 그것을 아이들이 학습하기 좋은 형태로

달콤하게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전공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유아교육전공자가 한글도, 국어도, 영어도, 수학도, 과학도 모두 다룰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솔직해지자.

 

일곱째, 출판사에 대한 의문

 

한글 교육, 국어교육 관련 학자들이 통글자의 폐해를 지적하는데도

출판사들은 왜 통글자의 가치를 주장하고, 계속 책을 판매하는지 의문이다.

아래 얘기는 일부 문제가 있는 출판사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게는 아주 충격적이었다.

몇 년 전 어떤 교재 제작자와 만나서 나눈 대화가 의미심장했다.

모 출판사의 교재제작실에서 근무하던 사람이다.

"통글자로 교재를 만들어야 오래 가르치게 된다"

"한글을 너무 빨리 가르치면 출판사가 손해다"

이 말이 개인의 의견인지 아니면 그가 속한 출판사의 내부 원칙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이런 말을 들었다는 것뿐이다. 그런데,

이 말이 그리 가볍게 들리지는 않았다.

통문자 학습을 주장하는 교재는 적어도 1년 이상의 학습 기간을 필요로 한다.

방문학습지 중에는 이런 교재가 더러 있다.

교재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며 체계를 높여간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한글을 가르치는 교재라기보다는

어휘를 가르치는 교재, 문장을 가르치는 교재로 보이기도 한다.

조선왕조 실록(세종실록)에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깨우칠 수 있다"고

기록한 한글을 일년 이상 가르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시간이면 한자도 수백, 수천개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한글이 가장 과학적이며 우수한 문자라는데 가장 어렵게,

가장 오래 가르쳐야 한다면 좀 이상하지 않은가?
 

 

몇 년전에 시중에 나와 있는 상업용 교재를 분석한 논문을 읽을 적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통문자 중심으로 구성된 교재,

실제 한글을 사용하는 단위인 글자(음절)을 무시하고

자음부터 차례대로 가르치는 교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단어 선택도 획일적으로 자음 기역을 가르치면 가위, 가방 등의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주제 중심으로 한글 수업까지하게 된다면 교사는 물론이고 학생들도 큰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남게 됩니다. 저도 경험으로 이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한글을 국문학으로, 국어교육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2 외국어로서 한글을 한국어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습니다.

매 주 수업을 하면서, 해가 거듭될수록 쌓이는 경험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경험도 필요하고 중요하며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필요 조건일 수 있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학교 교사의 전문성이 얼마나 절실한가 느끼고,

이것이 한국학교 교사의 자존심과 자부심의 바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