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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주의와 정체성" - 교사의 밤 강연 (2012년 3월 6일 입력)

기타
작성자
Naksnec
작성일
2020-07-24 16:12
조회
3097
다문화주의 와 정체성 (교사의 밤, 03/03/12)

 

Theodore Hughes

동아시아 언어 문화과 부교수

Columbia University

 

교사의 밤, 이 뜻깊은 행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국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미국에서 한국어나 한국문학을 가르치게 되면 다문화주의라는 미국의 현재 이데올로기 사조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의 다문화주의는 인권운동시기(post-civil rights era) 1960년대 이후에 시작된 이데올로기로서, 유색 인종의 정치적 참여를  문화적인 차원으로 옮기고, 또 그 정치적 저항을 무력화하것이 그 목적 이었습니다. 즉, 미국의 다문화주의란  정치에서  문화로의 전환을 의미하고,  이는  3.1운동 이후 1920년대에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소위  문화정치로  전환되었던 것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입니다.

 

미국의 다문화주의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한 세가지  핵심단어에 대하여 간략하게 언급하자면 관용(tolerance), 긍정주의(positivity), 및 비역사성(ahistoricality)의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이 늘어남에 따라 이와 비슷한 다문화주의 담론이 대두 되고 있습니다.) 첫째, 관용은 미국에서 소수민족문제를  적절히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자주 인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 관용이란 단어에는 단순히 타민족에 대한 개방성과 포용성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는데 그 이면에는  자비 와  억제 의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소위  다르다 는 딱지가 붙은 사람들을  이해하고 존중해 줘야지 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다른 점 을 존중해 준다는 의미보다는,  백인들이 소수민족의 다른 점 을 너그럽게 수용하는 백인 자신들의 선량함을 스스로 자화자찬하는 뉘앙스가  숨어 있습니다. 동시에, 관용이란 개념에 내재되어 있는  억압 의 개념은   다른  이들 또는 타자화된 에게 어딘지 모르게  거부할 만한 구석이 있기는 있지만  이들에게 해를 가하거나 이들나름의 생활양식, 즉, 그들의  문화를 바꿀 것을 강요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해야 함을 전제하자는 개념입니다.

 

둘째는 긍정주의(?)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문화주의는 민족문제를 "문화"라는 개념의 차원으로 변화시켜, 각각의 문화가 한 사회 내에서 존중받아야 함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각 민족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에스닉 음식, 의상, 수공품, 또는 문화적 상품등을 편견 없이 소비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의미의 다른 민족에 대한 존중은  다문화주의의 세번째 핵심 단어인 비역사성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긍정주의는 미국이 인종차별주의 국가로서 지내온 과거의 역사적인 흐름과는 관계없이, 현재에는  인종차별이 없는 평등 사회라는 점만 강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이 평등이라는 개념은 아주 피상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상황만을 부각시키는 긍정주의란 것은 미국에 오랬동안 존재해왔던 인종차별의 긴 역사와 그 결과 미국내 동양인그리고 흑인등 그 소수민족 커뮤니티에 미쳤던 파괴적인 고통의 역사를 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문화주의에서  "소수 민족집단"으로 분류된 흑인이나 아시아계 사람은 특수하다고 간주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수성"은 백인을 초월적이면서  정상적인 주체로  간주하는"보편성"과는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다문화주의는 백인중심의 사회를 벗어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

 

미국의 대 동아시아 정책, 특히 한국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며 본 절을 마치고자 합니다. 19세기에 있었던 대륙횡단  철도공사에서의 중국인 노동자 착취, 아시아인에게 미국 시민권을 주는 것을 금지한 법 제정,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계 미국인들에 대한 강제 수감, 게다가 서양 우월주의자들은   황색 공포(yellow peril) 라는 단어를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 영어로 하자면, Asian Americans,들을 이해할 수 없고 결코 동화시킬 수 없는 , 자신들과는 다른, 소외된 종족으로 분리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  이민법의 개정과 다문화주의가 출현함으로써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미국내  모범적인 소수민족 으로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즉,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일구어낸 교육적, 경제적 성공을  미국의 자유 민주주의와 다문화주의의 성공적인 예로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즉,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미국사회에 위협적인 요소가 아니며, 동화되기 어려운 집단이 아님을 미국 사회에서 증명해야 했으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나치게, 극도 동화시키려는(hyperassimilable)  노력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그들의 동화 능력을 증명했던 노력들은 역설적으로  소위 “주류사회”로부터  그들이 위험한 "타자(others)"로 규정되어져 왔음을 보여줍니다.

 

황색 공포와 모범적인 소수민족이라는 논리는 미국의 대 동아시아 정책을 결정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일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일본은 1920-30년대에, 그리고  태평양 전쟁 시기에 미국인들에게   황색 공포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렇던 일본이 1945년 패전 이후에는 미국내에서는 모범적인 소수민족으로, 또 냉전체제의 세계질서 아래에서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복종하는 모범적 국가로 변화되었습니다. 저는 한국 역시 비슷한 예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미국 사회에서는 북한이 황색 공포 국가로서  불가사의하고 결코 동화될 수 없는 집단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남한은 비서구 국가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체제 아래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모범적인 소수민족으로 받아 들여지고 있습니다.

 

미국 학부과정의  한국문학 수업

 

이제부터 말씀 드리고자 하는 내용은 제가  컬럼비아대학교라는 특정 교육기관에서 8년간 한국 문학을 강의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밝혀 드립니다. 다문화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제 수업을 듣는 학부생 중 한국계가 아닌  학생들은 수업에서 무언가 확실하게  다른(other), 비주류에 대해서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기대합니다. 반면, 한국계 학생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줄 한국에 대한 무언가  긍정적인 요소들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제 수업에서 이 다른 그룹의 학생들은 모두 일제시대, 해방 직후 시기의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접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작품들이 한국 사회, 식민통치 및 주한 미군 주둔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으며, 여성 작가의 경우에는 한국의 가부장제를, 다른 경우에는 대부분 빈곤과 자본착취 그리고 국가의 분단상황에 의한 고통과 수난의 경험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중 어떤 내용도 이 학생들이 등록 당시 기대했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시아 이민자들의 역사에 대해서,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에 관해,  아는 바가 있건 없건,  많은 경우에 한국계 미국인 학생들에게는 한국 문학 수업이라는 공간이 그들이 현재 미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받고 있는 여러가지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또 더 이상 "소수자"가 아닌 사람으로서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미국사회에서 모두 "아시아인" 혹은 "한국인"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그들이 막상 한국역사나 문학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일종의 아이러니에 직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한국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실제로 한국문화에 대한 학문적 성취 뿐만 아니라 그들이 미국사회내에서 당면한 문제들, 즉 다문화주의가 강요하는 대로 그들이 그 소수 민족에 속한다면 이미,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미국 교실에서 배우는 모순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백인 학생들도 한국문학 수업을 통해 일종의 아이러니에 직면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한반도에 관하여는 분쟁지역, 혹은 미국 안보에 위협적인 지역이라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면  한국 문학 작품에서는 무언가 이국적이면서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소를 기대하며, 한국 문화 고유성을 예찬하는 문학작품을 원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한국에 관하여 떠올리는 이미지는 전쟁, 국가 안보 등이지만 한국 문학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가 처해 있는 상황과 전혀 다른 요소를 기대합니다. 즉 한국 문학이 신비로우면서도, 서구 문학과 상반되는 다른 느낌을 줄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국 문학 텍스트에 보여지는 주요 요소에 대해 제 학생들이 보였던 반응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한국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미국인 인물인데, 대부분이 기지촌 문학 작품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미 관계, 1945년에서 1948년 사이의 미군정 등의 역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한국 전쟁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으며, 미군이 남한에 무려 50년 동안이나 주둔해 왔다는 사실도 알지 못합니다. 가장 첫번째로 한국문학을 접하면서 그들이 알게 되는 점은 자신들이 결코 일반적 기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들도 "타자"로 비추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난생 처음으로 한국 민족의 정체성이란 입장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는 그들 자신이 "다르게" 비춰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백인 학생들은 아직도 영화와 문학 등을 통해서 유럽 앵글로색슨 중심의 정체성에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한국 문학에 나타난 백인 미국인에 대한 그러한 묘사는, 미국 백인 학부생들에게 자신들을 백인중심적 사고 방식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백인을 초월적이고 일반적인 주체로 만드는 과정 자체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인 후세들에게 정체성을 인식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일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한국인의 정체성 형성이라는 것이 다문화주의의 목적에만 한정되지않고 한국적 특수성과 주류사회의 대립 논리를 벗어나, 보다 진보적이고 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등사회 건설하는데 이바지할수 있으면  더욱 바람직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풍부한 문화, 한국조상의 슬기, 한국의 멋, 한글의 우수성, 그리고 한국의 오천년 역사, 독립투사들의 굳건한 의지, 1945이후의 근대화, 학생운동의 희생과 민주화의 과정을 볼때, 한국문화와 역사가 한국뿐만아니라 미국에서도 보다 평등하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에많은 교훈을 주고, 또 공헌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한국어, 한국 문화, 한국역사를 가르치는 여러선생님들께, 한국과 한국문화를 소중히 생각하는 동지들께, 이 커뮤니티의 한 일원으로서 항상 가지고 있는 깊은 고마움을 이 기회를 통해서 전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